이상향의 입체적 구현을 통한 몰입의 극대화


장민한(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박상화 작가의 <무등판타지아-사유의 가상정원>작품을 보면 실제로 숲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 작품은 손수 찍은 무등산의 사계절 영상들과 산 주위의 문화유적 영상

을 편집하여 여러 층의 반투명 메시 재질 영사막에 투사한 작업이다. 이 영상은 일정 간격을 두고 설치된 여러 장의 반투명 막에 층층이 투사됨으로써 평면 이미지라기보다

입체 이미지로 나타난다. 새소리, 바람 소리 등이 이 영상에 더해지면서 언뜻 보면 이것은 투사된 동영상이 아니라 스스로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설치물처럼 보인다. 재현 영

상처럼 보이기보다는 어떤 미지의 존재자가 관객 앞에서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작품의 유형을 굳이 설명하자면, 설치를 이용한 영상작업, 혹은 영상을 이용한 설치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영상의 의미를 효

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치작업을 추가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설치 작업이 영상 작업에 종속되었다고 할 수 없다. 두 작업은 작가가 의도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

달하기 위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박상화 작가는 오늘날을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려고, 어머니 품과 같은 무등산의 아름다

움과 옛 문화의 정취를 영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무등산의 사계와 옛 문화유산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편집 기술을 이

용하여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편집한다.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관객들이 보다 더 직접적으로 이 영상을 체험하고 몰입할 수 있는 수단을 찾는다.

그 해답이 바로 이미지를 여러 층의 영사막에 투사하는 방법이다.

박상화 작가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체와 형식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미술 작가가 지녀야 할 전형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는· 영화처럼 관객이 완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을 목표로 한다. 이번 작품의 목표는 직접 촬영한 무등산사계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바탕으로 힘든 일상에서 벗어

나서 휴식과 위안을 주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이 목표에 적절한 동영상을 만들고, 관객들이 이 동영상을 통해 즉각적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있다. 이 목

표는 여러 겹의 메시 영사막을 이용한 투사를 통해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영상이 한 장의 영사막에 투사가 되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여러 장의 메시 천에 이미지를 투사함으로써 이 이미지는 단순히 자연 풍광을 편집한 이미지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이상향의 실체로서 기능한

다.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관객과 이 이상향과 하나가될 기회를 제공한다. 여러 층의 영사막 사이를 관객이 거닐 수 있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작품에 적극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감상 방식이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 관객이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게 만든다. “사각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영상을 넓은 실제 공간에

자유롭게 펼쳐내고, 관객들은 펼쳐진 영상의 숲을 걷고, 내부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작품을 감상하고 자신만의 사유의 시간과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영상 설치 작업을 통해 이 주제의 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동시대미술에서 영상 작업은 점점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영상 매체가 지닌 뛰어난 묘사 능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이 글로벌 시대에 힘들게 살고 있는 소수자

삶의 가치와 감수성을 표상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 비엔날레에 영상 작업이 많이 초청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이념을 표상하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전자가 미처 몰랐던 소수자 삶의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면, 후

자는 우리가 막연하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보편적 이념들을 생생하게 표상함으로써 우리에게 삶의 안식을 제공한다.

유한한 존재로서 우리는 삶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보편 이념을 새롭게 구현하고, 그것을 타자와 소통하는 일은 이전 시대의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시대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들 중 하나이다. 문제는 이 주제를 어떻게 표상하여 소통하는 것이 우리시대에 적합한가이다. 박상화 작가는 디지털 영상 작업과 설치 작업의 절묘한 결합

을 통해 이 과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가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지속하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예컨대, 산수화 같은 과거의 양식으로

는 오늘날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이상향을 그려낼 수 없다. 동시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상향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이것을 적절하게 소통할 수 있는 표현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